박노해 사진전 - 나 거기에 그들처럼
박노해 사진전 - 나 거기에 그들처럼

 
작성일 : 10-12-10 22:46
[광주드림] 드림이 만난 사람, 박노해 시인
 글쓴이 : 광주드림 (211.♡.149.164)
조회 : 1,969  
[드림이만난사람] 박노해 시인
‘나 거기에 그들처럼’


 시인 박노해(53), 돌아보면 그는 ‘혁명가’였다. 그것도 무장투쟁을 불사했던 강성 사회주의 혁명가였다. 한때 타협 같은 건 그에게 아주 없어 보였다. 지금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인다. 그는 지금 혁명가가 아닐까?

 사실 이 질문은 그에게 던질 것이 아니다. 이렇게 묻는 나 자신이나 그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던져야 할 물음이다. 감옥에서 나온 뒤 그의 행적에서 실망을 읽는 사람이 많다. 더러는 그의 변절을 입에 올리기도 한다. 과연 그는 변했을까, 그를 바라보는 우리가 변한 것은 아니었을까? 혹은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당신은 박노해에게 변절을 덮어씌울 만큼 떳떳하게 걸어 왔는가?

 박노해라는 이름 앞에서 많은 것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만 뒀다. 한때 얼굴이 없었던 그 시인의 시는 만인의 역할 모델이었다. 기대가 높았다. 감옥에서 나온 뒤 그의 어떤 말들은 단단하게 움겨쥔 주먹을 스르르 풀리게 했다. 그러나 그것이 박노해의 탓일까? 그는 여전히 당장 제 눈앞의 이익보다 사람의 가치에 훨씬 큰 방점을 찍고 있다. 그렇게 살고 있다. 단언컨대 우리는 박노해처럼 자신을 버리며 살지 못했다. ‘나 거기에 그들처럼’ 서 있는 일은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진을 들고 그가 광주에 왔다. 오는 30일까지 무각사 로터스갤러리에서 ‘나 거기에 그들처럼’전을 연다. 감옥에서 나와 지난 12년 동안 그가 세계의 분쟁지역을 돌며 찍은 사진은 13만 컷이다. 그의 발자국이 찍힌 곳은 중동과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였다. 눈물이 많은 지역이다. 그 중 30여 점이 걸렸다. 그러므로 사진은 압축의 언어다. 사전 지식을 버리고 사진을 봤다. 그에 대한 어떤 판단 없이 다만 사진과 그가 직접 쓴 사진설명들을 통해 그의 12년을 읽어내 보고 싶었다.

 

 ‘생명과 평화’ 위에 삶을 놓다

 다들 안다. 한때 그는 금기 앞에 맨몸으로 섰다. 1989년의 일이다. 그는 사회주의를 천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을 결성했다. 수배의 시간은 무려 7년이었고, 1991년 체포됐다. 그를 기다렸던 건 무자비한 고문이었다. 사실 그는 세상에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24일 동안 참혹한 불법 고문을 견딘 그에게 역시나 사형이 구형됐다. 재판 끝에 무기징역이 확정됐고, 그는 세상과 격리됐다. 7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가 석방된 것은 1998년 8월15일이었다. 특별사면이었다.

 감옥에서 나오고 왜 그는 사회주의 혁명을 꿈꿨던 나라를 떠나 세계의 분쟁지역으로 갔을까? 그 행위를 대변하는 말이 ‘지구마을’이다. “사회주의 혁명만이 인민 해방의 길이라 믿었는데 소련은 붕괴됐고, 길을 잃었다. 치열한 반성이 필요했다. 감옥에서 하루 15시간을 공부하며 정직하게 성찰했다. 길이 보이더라. 지금은 전 지구가 하나로 연결된 마을이다. 늘 전쟁 위에서 신음하는 나라들이 아직 많고, 분쟁지역에는 우리와 똑같은 고통의 동심원이 그려져 있다. 그 고통과 함께 서 있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떠났다. 근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는 언어의 한계를 느꼈고, 무력한 시인에 불과한 스스로의 능력이 많이 아팠다. 그는 죽음과 죽음으로 엮어진 땅을 걸었다. 전투기 소리가 들리고, 포탄이 터지고, 건물이 무너진 뒤 방금 옆에 있던 사람이 죽어 있었다. 통곡소리만 길게 들렸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사람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그 답이 ‘생명과 평화’다. 그는 스스로의 사회적 발언을 금했다. 대신 함께 ‘생명·평화·나눔’의 가치를 심장의 떨림으로 기억하는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했다.

 

 사진, 빛으로 쓴 시(詩)

 언어의 무력함 뒤에 그가 든 것이 카메라다. 언어의 벽 앞에서 말로는 심장이 담긴 언어가 전달되지 않았다. 처음엔 자동 ‘똑딱이’ 카메라로 찍었다. 찍으면서 사진의 힘을 알았다. “약자들은 카메라를 필요로 하고, 강자들은 카메라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그들의 내면을 담고 싶었다. 돈을 꿔서 수동 라이카 카메라와 35㎜ 렌즈를 샀다.

 그에게 망원렌즈 같은 것은 없다. 그들 삶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그는 늘 분쟁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함께 일하고, 함께 놀고, 함께 아파하며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과 몇 시간씩 축구를 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 그가 믿었던 진실은 단 하나다. “언제나 진실은 현장에 있다. 현장이 진실을 가지고 있다. 현장이 변화하면 진실 또한 변화한다.”

 그 믿음이 그의 사진에는 선명하게 반영돼 있다. 발이 가야 사진이 찍혔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발이 움직이는 그를 사람들은 믿었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 삶을 보여줬다. 그는 작품을 찍으려는 욕심이 없었다. 오히려 자극적인 사진은 철저히 배제했다. 그들 삶, 있는 그대로를 담고 싶었다.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를 고집하는 것도 그들에 대한 사랑의 한 표현이다.

 “기계가 너무 좋으면 몸이 게을러진다. 너무 편해지지 말고 거리를 둬야 한다. 필름카메라는 셔터를 함부로 누를 수 없게 된다. 줌도 안 되고 발로 다가가야 찍을 수 있다. 그러면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실제 거리와 심리적 거리 모두가 가까워진다. 사랑하는 만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순박하며 그래서 순결하다. 그리고 진실을 담는다. 찍는 자의 의도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삶, 그의 사진은 수많은 죽음들을 넘어간다. 어떤 사진은 그들의 주민등록 사진이 되고, 어떤 사진은 영정사진이 된다. 그의 사진은 세계에 대한 시대정신과 이념을 담은 시각적 표출이고, 정신적 분투다. 사진이 삶 자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엇이 박노해를 거기로 이끄는가?

 <페루에서는 페루인처럼/ 인도에서는 인도인처럼/ 에티오피아에서는 에티오피아인처럼/ 이라크에서는 이라크인처럼/ 그곳에서는 그들처럼// 가난의 땅에서는 굶주린 아이처럼/ 분쟁의 땅에서는 죽어가는 소녀처럼/ 재난의 땅에서는 떠다니는 난민처럼/ 억압의 땅에서는 총을 든 청년처럼/ 그곳에서는 그들처럼// 나 거기에 그들처럼> (‘나 거기에 그들처럼’ 전문)

 그랬다. 그는 피의 땅에서 언제나 나 거기에 그들처럼 서 있었다. 전시에 이런 사진이 있다. 제목은 ‘폭격더미에서 살아나온 사나 샬흡(13세)’이다. 부서진 폐허 위에 소녀의 얼굴이 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이미 다 알아버린 표정이다. 박노해는 사진 아래 이렇게 썼다. ‘레바논 남부 까나 마을 집단학살 현장. 건물 지하실에 대피한 마을 사람들 중 65명이 사망했고 그 중 35명이 어린아이들이었다. 전폭기 대 아이들, 까나 마을 어린이 대학살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이스라엘과 미국은 인류의 눈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폭격더미에서 살아나온 사나 샬흡은 하루아침에 부모와 언니와 오빠와 집을 잃고 혼자서 어린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소녀 가장이 되었다.’

 오늘 이 순간, 지구마을 어딘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더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한가? 혁명가 박노해가 ‘생명과 평화’를 몸의 언어로 기록하는 이유의 전부가 이거다. 이것뿐이다. 이 절실한 이유 앞에 ‘단지’나 ‘겨우’를 달 수 있는 자, 세상에 없다.

 이제 그의 시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그에게는 사진과 시가 이음동의어이니, 그가 언급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옮겨놓는 게 옳겠다.

 그가 아직 전남의 시골마을에 살던 어느 가을 아침이다. 마당 쓸기를 싫어하는 그에게 어머니가 행동으로 시를 보여준다. 어머니는 감나무를 툭 쳤다. 햇살 머금은 감나무 이파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세상의 가을을 모두 담고 있는 감나무 붉은 잎들, 그것을 보며 어머니가 한마디를 했다. “가을이 참 고요하지야?” 박노해에겐 그게 시다.

 글=정상철 기자 dreams@gjdream.com

사진=함인호 ino@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1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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