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사진전 - 나 거기에 그들처럼
박노해 사진전 - 나 거기에 그들처럼

 
작성일 : 10-10-13 07:12
[작가와의 대화 2]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시대, 그에게 길을 묻다
 글쓴이 : 나 거기에 (211.♡.149.141)
조회 : 1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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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며 가슴이 벅차서 울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저를 돌아보며 반성을 하게 했던 사진들도 있었어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교육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교육이라는 게, 학교라는 게 뭘까요?

저는 제도화된 학교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진이 찍고 싶으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모두 다 사진학과를 가야 됩니다.

요리를 하고 싶으면 요리를 직접하면 되는데 이탈리아 유학을 갔다와야 하고요. .

우리는 우리 안에 이미 타고난 천재성을

시장, 대학, 국가의 삼중억압에 저당잡혀 사육당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아홉살 수잔나라는 소녀가 있는데요.

얘가 둘라를 하나 메고 양을 치고 있으면 그렇게 포스가 넘쳐요. (웃음)

'수잔나, 네 양이 몇마리냐' 물어보니까 몇 마리인지 모르겠다고 하는거에요.

얘가 학교를 안 다녀서 숫자를 모르는구나 했더니

'이 양은요, 지금 새끼를 배고 있고요,

얘는 하루에 젖을 양 두 마리를 짜야 하는 만큼 주고 있고요,

얘는 발가락을 다쳤어요' 하며

50마리를 모두 다 소개를 하는 겁니다.

 

저는 그 순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물의 질적 차이를 알지 못하는 숫자는 죄악입니다.

숫자가 삶을 뒤덮어버리는 것은 삶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하나의 잣대로 한줄로 줄세우는 사회는 이미 삶이 죽어버린 사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학교에서부터 체계적으로 교육받고 체계적으로 폭력을 당하고 있죠.

 

봄이면 제일 가슴 아픈 풍경이 열여섯 코리아의 소녀들입니다.

가장 꽃같은 나이에 가장 음울한 얼굴을 하고

가장 싱싱한 나이에 가장 끔찍한 교복 패션으로 지냅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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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우리 부모세대가 진짜 나쁜 세대입니다.

전쟁과 식민지와 군사독재를 힘들게 벗어난 그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해외여행 보내주고 좋은 대학 다니게 한다고,

우리가 글로벌 코리아로 세계 10위 반열에 올라갔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우리는 가난했어도, 평상에다 모닥불 피워놓고

할머니나 부모님의 오래된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가슴이 눈물로 범람하고 비옥한 옥토가 쌓였었는데

이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까?

모두 과외에 맡기고 인터넷에 맡기고 텔레비전에 맡기고,

우리 언어는 전부 비즈니스 언어, 티비 예능프로 언어, 마케팅 언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인문학 책을 읽힌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이 듭니다.

 

제가 도시 빈민 아이들의 주말 학교 교장을 7년째 맡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대자연을 품을 때 가슴 속에 시가 흐르고 살아나기 시작하기에,

그래서 저는 무조건 아이들에게 농사를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직접 지은 고구마를 길거리로 들고 나와서는

'군고구마 사세요,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며

나눔문화가 세운 팔레스타인 난민촌 학교에 수익금도 전달하더라고요.

서로 편지도 주고받지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변화합니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고등학교 졸업한 아이들이 나왔고

이 아이들이 나눔문화 회원이 되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 이런 것이 인간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 자기 삶의 이야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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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학교 2학년인데요, 아까 사인 받으면서 만져본 손이 참 따뜻하시더라고요.

따뜻한 손을 오랜만에 만져본 것 같습니다.

사진을 둘러보면서 슬프기도 하고 여러가지를 느꼈는데요.

저도 힘들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혁명가, 그런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그 분들을 위해서 뭘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지금은 좋은 말이 난무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헛된 위안들이 도처에 깔려 있고, 거짓 희망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67억 인류 속에서 보면 대한민국에는 가난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만 있을 뿐.

그런데 아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풍요는 우리 젊은이들의 영혼을 잠식하고

너무 많은 지식으로 지혜를 말라붙게 만들었습니다.

'저주받은 자유의 시대'입니다.

지금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하다는 젊은이들이

일다운 일자리도 얻지 못하고 부모에게 빚지고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하루 중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을 노동하는 일터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앞만 보고 높은 소득을 향해 질주하느라

내 영혼과 가슴이 일치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대신에 자기를 팔고 있죠.

 

이런 시대 속에서 정말 대안적인 혁명을 해보겠다고 몸부림쳐도

저는 단 한사람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래서 전 누구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 무력함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뼈저리게 압니다.

다만 그 거대한 악의 시스템에서 나 자신이라도 온전히 지켜야겠다는 마음입니다.

 

흔들릴 때는, '난 안 팔아!’ 라고 말하면 됩니다.

거대한 악의 시스템이 짓눌러도 끝끝내 무릎 꿇지 않는 단 한 사람만 살아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진정한 나 자신을 잃지 말고,

내 영혼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꾸준히 밀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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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답답한 학교생활을 11년째 하고 있는 고등학생인데요.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도 따뜻한 마음,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까요?
그리고 선생님이 저희 나이 때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사진 보러 온 게 아니라 인생상담하러 왔네? (웃음)
사진 속 비슷한 또래 친구들을 보며 느끼는 것이 많죠?
해발 5천미터에서도 알파카를 치는 사령관이 되어서
힘차게 뛰어다니며 어른 한몫을 해내잖아요.
숨이 차서 난 열 걸음도 못 따라가겠던데...
 
여러분은 부모세대를 마음껏 원망해 주십시오.
여러분에게 돈으로 살 수 있는 능력만 키워줬을 뿐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체계적으로 박탈해버린
역사상 죄가 제일 많은 세대가 우리입니다.
 
그리고 돌아갈 곳을 남겨두지 않았죠.
탐욕의 포퓰리즘에 휩쓸려서
고향이고 농토고 전통이고 문화고 다 밀어버렸어요.
뒤에는 시멘트 사막 밖에 남은 게 없어요.
마음이 말라붙을 때는 굽이굽이 수천년
흐르고 있는 강물을 떠올리며 다시 일어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오리배, 기름배를 띄우고 관광단지를 만든다고 하잖아요.
 
저는 열 다섯살 때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서 공장에서 일했어요.
그 때 그나마 젊음의 유일한 탈출구는 휴일에 다방에 가는 거였죠.
옛날식 다방에는 어항이 하나 있었어요.
물이 탁해서 그런지 붕어가 힘없이 죽어가더라고요.
너무 괴로워서 창자를 뱉어내듯이 더러운 물을 토해내면서요. 
그런데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겠다 싶더라고요.
내가 개인으로 아무리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해도
이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과 생활문화가 공기처럼 하루하루 나를 잠식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이 거대한 어항을 깨뜨려 흐르게 하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고상하고 영성이 뛰어나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나 혼자서는 힘듭니다. 선한 마음을, 나 자신을 지키고 싶다면 좋은 벗들을 만나세요.
좋은 벗들과 함께하는 우정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눈 맑은 친구들이 곁에 있었기에 자신을 지키며 그 험한 세월을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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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은 마지막으로 안데스 만년설산에 있는 

께로족 마을에 가던 길의 

  

이야기를 전하며 

  

작가와의 대화를 마쳤습니다.

 

"께로족 마을을 가기위해 만년설산을 오를 때였습니다.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고산지대인데, 

제 걸음으로 30시간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께로족 마을에서 빛나는
희미한 등불 하나를 발견해서 살 수 있었죠.
 
우리들 마음 속에 품었던 꿈도 희망도
끝없는 어둠 속을 걸어가듯 숨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한 어둠이 우리를 뒤덮어도

희미한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삶은 기적입니다

인간은 신비입니다

희망은 불멸입니다.

 

단 한 사람만 살아있다면,

그대 희미한 불빛과 사랑과 나눔만 살아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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