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사진전 - 나 거기에 그들처럼
박노해 사진전 - 나 거기에 그들처럼

 
작성일 : 10-02-08 19:59
시인 박노해가 카메라를 든 이유
 글쓴이 : 레이디경향 (211.♡.149.133)
조회 : 2,058  
ㆍ“제 가슴을 울리지 않으면 카메라를 들지 않았어요”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혁명가의 삶을 걸어온 박노해 시인. 요즘 그는 국경을 넘어 머나먼 중동 지역에서 삶의 희망을 찾고 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중동 지역을 다니면서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친구이자 가족 같은 사람들과 교감했다. 박노해가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희망’을 들어봤다.

중동 사진 4만 장과 시 4천 편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박노해 시인. 고문과 수감생활까지 겪으며 ‘민주화’를 부르짖었던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민주화를 노래하지 않는다. 이미 대한민국은 세계화되어 있고, 가난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단지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만 있을 뿐.

어느새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박노해의 사랑은 국내가 아닌, 국경을 넘어 세계로 향해 있었다. 박노해 시인이 처음 중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9년,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쿠르드인의 대대적인 항의 시위를 목격하고부터다. 평화 활동을 위해 중동 분쟁 지역을 다니면서 그는 “국경을 넘으면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글’로 전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고, 그래서 오래된 만년필 대신 카메라를 들게 됐다”고 고백한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는 것이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않을까 싶어 사진 찍는 걸 회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와 ‘카메라’는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사진을 찍으면서 시가 떠오르기도 하고, 시의 내용을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난 10년 동안 중동 분쟁 지역에서 찍은 사진만 해도 4만여 장이 넘고 꼬박꼬박 써온 시도 4천 편이 넘는다. 수많은 사진들 중, 아무런 의미 없이 찍은 사진은 단 한 컷도 없다.

“저는 분노하는 대상이 됐든, 애정을 느끼는 대상이 됐든 제 가슴을 울리지 않으면 카메라를 들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에 시가 울리지 않는 것은 찍지 않았죠.”

수장될 위기에 처한 8천 년 된 하산케이프 Hasankeyf, Kurdistan, Turkey, 2006. 인류 문명의 자궁인 티그리스강의 상류 하산케이프 다리. 아나톨리아 고원과 메소포타미아 사이에서 문화 교량의 역할을 해왔으며 고대 수메르 문명과 로마, 오토만 제국의 문화 유적이 가득하다. 8천 년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하산케이프는 쿠르드인의 오래된 삶의 자부심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류의 문화유산이고 영감의 원천지인 하산케이프는 지금 서서히 수장되어가고 있다. 터키 정부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로 흐르는 생명수인 티그리스강을 막아 중동의 수자원을 확보, 통제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의 지원으로 거대한 일리수 댐을 완공해 2006년 3월부터 물을 채우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 4만여 점 중에서 37점을 선별해 첫 사진전을 열었다. 전시를 앞두고 그는 수많은 사진을 보고 또 봤다. 그가 촬영한 사진들 중에는 충격적이고 극단적인 것도 많았다. 어떤 기준으로 사진을 골랐을까.

“인간의 영혼을 함께 나누며 정신이 울려 나오는 사진을 골랐어요. 선하고, 부드러움이 배어나오는 사진이요. 한국 사람들이 이번 사진전을 통해 성찰을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매번 유언장 써놓고 분쟁 지역으로 향해 민주화운동과 탄압, 고문, 수감생활 그리고 이젠 중동 분쟁 지역의 평화운동가까지. 인간 박노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편안한 삶을 거부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가 원하는 삶과 그가 고집하는 가치관은 무엇일까.

“저는 학연, 지연, 든든한 백그라운드 아무것도 없어요. 한국에서는 시골에서 한 달에 70만원의 생활비로 삽니다. 제가 외교관도 아니고, 도 아니고, 소속단체가 있는 것도 아니죠. 그런데 분쟁 현장이나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는 사랑과 신뢰를 많이 받아요. 그 사람들이 저를 보호해주고 숨겨줍니다. 약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도, 강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카메라였습니다.”

중동 지역 사람들도 그가 무슨 목적으로 사진을 찍는지 눈빛만 보고도 안다. 심지어 외간 남자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차도르 입은 여인들도 그의 손을 잡으면서 믿고 사진을 찍게 해줄 정도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들의 상황을 외부에 알려달라는 절박하고도 조용한 외침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과 10년을 함께한 박노해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총탄을 보면서도 다시 중동의 분쟁 지역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빵을 구하러 가는 남매 Srobin, Lebanon, 2006. 몇 번이나 체포되고 억류되며 찾아간 스로빈 마을. 어른들은 부상과 탈진으로 망연자실한데 아이들은 참으로 놀라운 존재이다. 공포와 절망의 전쟁터에서 가장 먼저 울고, 가장 먼저 웃고, 그 어떤 무기로도 막을 수 없는 자신들의 미래를 향해 가파른 비탈길을 앞장서 올라가고 있으니.
“제 일생을 돌아보면 후회 없이 행복했습니다. 분쟁 지역에는 언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갑니다. 유언장도 써놓지요. 가끔 통역사를 대동할 때는 그런 부탁도 합니다. 혹시 내가 총에 맞으면, 올리브 나무에 기대 마지막 담배 한 대 피울 수 있게 해달라고요. 제 목숨은 이미 하느님에게 맡겨놓았죠.”

1975년부터 민주화운동을 시작한 그는 늘 고독과 많은 싸움을 해야 했다. 한때는 동료이고, 선후배였던 사람들과 지금은 적을 지고 사는 것도 그러하다. 진정성을 몰라줄 때는 정말 고독하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양심이 불편하고 영혼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한때는 안기부가 가장 무서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석방돼서 세상에 나오고 나니, 대한민국은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다. 이제는 ‘돈’이 가장 무서워졌다.

105세 어머니의 기도 Al Jazeera, Syria, 2008. “내 나이는 백다섯 살, 내 기억은 5천 년이야.” 4대를 키우며 75명의 일가를 이루신 5천105세 어머니. 일생 동안 이 땅과 이야기를 지켜온 알 자지라의 움미(어머니). “많은 홍수와 전쟁과 아픈 이야기들이 유프라테스 강물처럼 흘러갔어. 하지만 나의 감사의 기도는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을 거야. 알라 아크바르(신은 위대하시다).”
하지만 그가 몸담고 있는 평화운동 단체 ‘나눔 문화’에서는 여전히 정부 지원이나 재벌의 기부를 받지 않고 있다. 덕분에 몸이 고생스럽긴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힘이 되기도 한다. 이번 사진전 이후 박노해는 올해 또 한 번의 사진전과 시집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그 사진전에서는 중동만이 아닌, 세계를 무대로 한 사진들을 선보일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을 보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찾아서 따뜻한 포옹 한 번 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박노해. 그의 만년필과 아날로그 카메라는 앞으로도 수많은 ‘역사’와 ‘희망’을 쓰기 위해 그와 함께할 것이다.

#1 중동 이야기 눈물 흐르는 지구의 골목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검은 연기와 시체 썩는 냄새가 흐르는 폐허더미에서 아이들과 여인들의 미칠 것만 같은 흐느낌 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그저 곁에서 함께 울어주고 어깨를 안아주고 총성이 그치면 아이들과 바람 빠진 공을 차며 놀아주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무력한 시인의 무력한 사랑이었다. 나밖에 읽어줄 사람이 없는 작은 수첩에 감추어진 그들의 진실을 수없이 기록했지만 국경을 넘는 순간 언어의 국경을 넘지 못하는 나의 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죽은 아빠의 사진 앞에서 Ain Al-Hilweh, Saida, Lebanon, 2008. 팔레스타인 난민촌 아인 알 할웨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가난과 절망과 전쟁의 공포를 공기처럼 마시며 자란다. 오늘은 새해 첫날,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이스라엘 점령에 맞서 처음으로 무장 저항에 나섰던 날 (1965년 1월 1일), ‘혁명 시작 기념일 (Intifada al Thawra, the Beginning of Revolution)’이다. 아이들의 등 뒤에는 죽은 자들이 있고 아이들의 앞길에는 총구만이 있다.
#2 중동 이야기 오래된 만년필을 쥐고 있던 내 손에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가 함께 들려졌다. 절실한 필요는 창조를 낳는 걸까.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20리 밤길을 단숨에 달려가는 어머니처럼 나는 현장의 진실을 카메라에 담아가고 있었다. 시인은 어둠 속에 모국어로 시를 쓰지만 절실하면 국경을 넘어 빛으로 시를 쓴다.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핀다! 무릎 꿇은 낙타처럼 홀로 되뇌이며. 그렇게 지난 10년 동안 침묵 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시를 써왔다.

전사한 형의 사진 앞에서 Nablus, Palestine, 2005. ‘한 집 건너 학살 가정, 한 집 건너 전사 가정’ 나블루스 발라타 난민촌엔 집집마다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난민촌 형제들은 어디서나 서로 손을 꼭 잡는다. 언제 서로 떨어질지, 언제 영영 사라질지, 한 번이라도 더 품에 안고 한 번이라도 더 손을 잡는다.
#3 중동 이야기 참혹한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나는 충격적인 장면과 극적인 이미지를 향해 다가서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고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먼저 경작하고 노래하고 연애하고 아이를 낳고 차를 마시고 기도하고 꿈꾸고 저항하는 민초들 속으로 혈육처럼 나직이 스며들어간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가 되었을 때, 그이들은 영혼의 지문을 누르듯 내 카메라의 흑백 필름에 가만히 아로새겨져 온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언어가 다르고 피부가 다르고 종교가 달라도 사람이 영물靈物이다!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어떤 빛의 사람인지, 무슨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지, 어린아이도 광야의 나무도 돌멩이도 다 안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비밀 공연 Al Qamishli, Kurdistan, Syria, 2008. 한밤중, 번득이는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 흐린 불빛 속에 벌어진 쿠르드 아이들의 전통 공연. 단 한 명의 관객인 나를 앞에 두고 감춰둔 전통 복장을 꺼내 입고 금지된 모국어로 노래하고 춤추는 시리아 사막의 무릎 꺾인 어린 낙타들.
#4 중동 이야기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은 그 현장을 다시 찾아갈 때이다. 처음 갈 때는 너무 두렵고 아프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찾아갈 때는 기쁘고도 슬프다.

멀리서부터 “샤이르 박이다” 소리치며 달려와 매달리는 아이들. 사진 속의 주인공들에게 내가 찍은 사진을 전해주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잔칫날처럼 웃음꽃이 피곤 한다. 내 사진 속의 아이들은 훌쩍 자랐고, 히잡 쓴 소녀들은 그새 커서 아가씨 티가 나면서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폐허가 되었던 마을은 아직 재건 중이고, 우리의 작은 정성을 모아 세운 학교와 우물과 도서관은 ‘한 줌의 희망’으로 자리 잡아가고, 불탄 올리브나무 숲과 종려나무는 푸른 가지를 뻗고, 폭격 맞은 모스크는 다시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우리는 샤이와 무화과와 대추야자를 나눠 먹으며 밤이 새도록 지나온 사연을 이야기하며 울고 웃는다.

그러나 내 사진 속의 주인공 가운데 보이지 않는 이들, 총에 맞아 죽고 자살 폭탄 저항으로 사라지고 영영 불구가 되고 실종된 사람들의 가족들은 전해준 사진을 품에 안고 하염없이 흐느낀다.

이스라엘군의 체크 포인트 Ramallah, Palestine, 2008. 분리장벽으로 고립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마을에서 마을로 이동할 때면 긴 줄로 세워진 채 이스라엘군의 체크 포인트에서 치욕적인 검문을 받는다. 체크 포인트는 저녁 9시면 통행 불가다. 아픈 아이를 품에 안고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해도 이스라엘 군인들은 차가운 총구만 들이댄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체크 포인트 앞에서 인생의 1/3을 보낸다. “내 나라 내 땅에서, 나는 날마다 걸어 다니는 수인(囚人)입니다.”
#5 중동 이야기 이제 인간성의 척도는 국경 안에 있지 않다. 지구시대의 성숙한 인간성은 오직 국경 너머에서만 가능하다. 한국인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 성취한 자부심을 새로운 책임의식으로 전환하여 인류 앞에 서야 한다는 부름을 받고 있다.

글로벌 평화 나눔은 단지 전쟁을 반대하는 사건적 대응이 아니다. 자본권력의 세계화에 맞서는 토박이 주민들과의 우애 어린 연대이고 지구시대의 인간성과 자연 생명과 노동 해방을 위한 영혼의 몸부림이다. 평생을 노동 해방과 시인으로 살아온 내가, 민주화 이후 지난 10년 동안 국경 너머 가난한 마을과 분쟁터를 걸어 다닌 것도 그 영혼의 부름 때문이다.

#6 중동 이야기 지금 이 시간에도 중동의 골목길에서는 폭음이 울리고 아이들과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흐르고 있다. 흐르는 눈물을 카메라 뷰파인더에 가리며 사진을 찍고 있는 나에게 젖은 눈빛으로 다가와 건네던 그분들의 말을 그대에게 전한다.

“총알은 언젠가 바닥이 나겠지만 샤이를 마시는 건 영원하지요. 먼 데서 온 친구여, 우리 함께 갓 구운 빵과 샤이를 듭시다.”

- 2010년 1월 7일 박노해

■글 / 김민주 ■사진 / 이성원 ■사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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