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사진전- 나 거기에 그들처럼
작가의 글 _ 박노해

1
전쟁의 이라크에서 두 달 가까이 헤매다
막막한 사막을 달려 나오는 길이었다.

 

몇 시간 전까지 내가 있던 바그다드는
전쟁의 후폭풍에 휩싸여 총소리와 검은 연기와
흐느낌 소리와 시체 썩는 냄새가 흘러다니는데
여기는 오롯이 작은 평화였다.

 

올리브 나무도 빨래도 양떼들도 저녁 짓는 연기도 아이들도,
지구 위에서 평온한 저녁을 맞이하고픈 내 오래된 꿈도
그 작은 마을의 소박한 흙집에 숨쉬고 있었다.
자유도 소망도 평화도, 가난과 애증과 슬픔마저,
아름다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었다.

 

2

민주화가 되고 자유의 몸이 되자 나는 다시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땅을 걸어다녔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랑이 없다면,
나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눈물 흐르는 지구의 골목길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 곁으로
내 발에 깃든 영혼이 그리로 가라, 한 것이고
나는 그 부름에 따랐을 뿐이다.

 

사랑은 발바닥이다.
발바닥이 가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발바닥이 이어주는 대로 만나게 되고
그 관계에 따라 삶 또한 달라진다.
현장에 딛고 선 나의 발바닥,
그 영혼의 낙인이 나의 사진이다.

 

3

세계의 진실은 쉽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다.
‘사랑한 만큼 보이는 것’이다.
사랑은 곧바로 쏘아진다!
자신의 가슴을 관통 당하지 않으면
‘불꽃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사진 속의 사람들을 찍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카메라를 통해 내 가슴에 진실을 쏜 것이다.
나의 시는 작고 힘없는 사람들, 그 말씀의 받아쓰기이고
나의 사진은 강인한 삶의 기도, 그 영혼을 그려낸 것이다.

 

4

세계화는 실상 ‘자본권력의 세계화’였다.
물신物神과 탐욕의 세계화는
국경을 지우고 자급자립의 삶터를 지우고
세계를 ‘평평히’ 점령해나가고 있었다.
아무 힘 없는 나를 붙들고, 그이들은 울부짖는다.
"우리를 죽이지도 말고 우리를 도우려 하지도 마라.
우리 땅에서 우리답게 살아가게 내버려 두라"고.

 

시인이자 노동자이자 혁명가로
온몸을 던져 살아온 나는,
슬프게도, 길을 잃어버렸다.
긴 침묵과 정진精進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정직한 절망은 희망의 시작이었다.

 

5

사진가와 지역은 운명적인 관계가 있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인류의 가장 아픈 자리,
나에게는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었다.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라 아픈 곳인 것처럼.

 

그곳에서 오래된 희망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물질적 결핍이라는 자기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삶을 꽃피우며 살아가는 사람들.
어떤 경우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신神 앞에 무릎 꿇는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그들은 어느 순간 잃어버린 나 자신의 모습이자,
위기에 처한 우리 인류를 구원할
마지막 남은 희망의 종자와도 같은
‘최후의 사람’이자 ‘최초의 사람’이기에,
나는 다만 경외의 마음을 바칠 뿐이다.

 

6

안데스 고원의 해발 4천 5백 미터 척박한 대지에서
마을 사람들과 두레 노동을 하며 감자를 수확하던 그분들이
나에게 치차를 따라주며 건네던 말을 그대에게 전한다.

 

“힘들 때 서로 기대는 인정이 살아 있고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관계만 살아 있으면
이것으로 우리는 충분하지요.
기쁨이 없고 노래가 없는 노동은 삶이 아니지요.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 내 삶에 감사합니다.”

 

혁명이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성대로 돌려 놓는 것이고 참모습을 되찾는 것이니.
그곳에서는 그들처럼, 나 거기에 그들처럼.



박노해 <작가의 글>에서

* 전문은 박노해 사진집 ≪나 거기에 그들처럼≫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