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사진전 - 나 거기에 그들처럼
박노해 사진전 - 나 거기에 그들처럼

 
작성일 : 10-10-11 17:50
참 좋았습니다
 글쓴이 : 허필두 (211.♡.98.51)
조회 :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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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주 금요일 오전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박노해 시인이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사진전시회를 하는데
    주말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아내와 아이들과의 나들이었습니다.

    전 돈이 없어서 1만원짜리 도록이나 하나 사자고 하니
    아내는 이왕이면 10만원짜리를 사는 게 박노해 시인과
    그 분들이
    하시는 일에 도움을 줄 것 같다고 하여
    사진집을 카드로 구입하였습니다.

    서명을 받으며 앉아서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먼훗날 우리 아이들이 기억할 수 있게 사진을 아이들과

    사진을 같이 찍어도 되냐고 하니

    딸아이 찬빈이와 막내 찬영이 뺨을 부비며 즐거워하셨습니다
    .






    아내가 우리는 멀리서 왔다고 하니 어디에서 오셨나고 하기에

    금천구 시흥5동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박노해 시인도 그곳을 잘 안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어머님께서 박미고개에 사시고 그곳에서
    공장생활을 했으며,
    형님이 시흥3동 성당에서 신부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1998~90년도에 <노동해방문학>에서 선생님의 글을 많이 접했으며,
    <사람만이 희망이다>, <오늘은 다르게>를 잘 읽었노라고......
    선생님의 <노동의 새벽> 초판본을 갖고 있다고 하니
    당신도 그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지금 헌책방에서도 구하고 힘들다고......

    초판본을 드리겠다고 하니 잘 갖고 있다가
    아이들에게 물려주라고......



    그렇게 가까이에서 그 분을 뵈었습니다.

    그날은 아이들과 아내가 아주 좋아했습니다.
    저 역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앉고 배가 고파 인사동 부산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으며
    찹쌀 동동주를 즐겁게 마셨고
    얼큰하게  취하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

    박노해 시인의 첫 사진전 '라 광야' 전시회가 열린다는 것을
    전에 알고 있었으나 어제 메일을 확인하고나서 가고 싶어졌습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박노해 시인에 대해서는 애증이 교차했었습니다.

    '노동의 새벽', '손무덤', '이불을 꿰매며' 등을 읽었던 20대 초반과
    1989년부터 노동해방문학에서 그의 전투적인 글을 읽고
    피가 솟았던 스물다섯에서 여섯으로 넘어가던 시절과
    사노맹 사건으로 구속되고 난 이후에 <참된 시작>과 '옥중 산문집' 등 저작들을
    대하면서 '그도 결국엔 전향을 하는 구나'라는 아쉬움만 남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채식을 하고 나서,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바뀌고 호흡이 길어지면서
    그가 예전에 쓴 <사람만이 희망이다>, <오늘은 다르게>를 다시 펴들었는데
    이젠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최근에 중동에서의 활동을 기록한 팜플렛은 바쁘다는 이유로,
    다른 책을 보느라 사놓고 보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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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환 선생이 쓰신 <조영래평전>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 이 땅에서 교육은 신분의 상징이기도 했다.

    제도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육법당의 모습은 어떠한가.
    1991년 이른바 '사노맹'사건으로 구속된 노동자 시인 박노해는
    수사과정서 겪었던 모멸감은 상상 이상이었던 듯하다.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1980년 노동문학을 선도했던 박노해는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놈이" 감히 변혁을 도모하는 조직의 지도가 된
    '불가사의'하고 '언어도단'의 상황을 거론하며 노골적인 증오를 내뱉는
    수사관의 태도에서 실제로 죽음이 목전에 와 있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중략-

    한편 같은 사건으로 조사를 받은 백태웅은 이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수사의 총책임자는 박노해를
    죽음의 공포 속에 몰아넣었던 바로 그 사람일 것이다.

    그는 불안에 떠는 백태웅에게 자신도 당신처럼 서울법대출신이자
    서울대총학생회 경력을 가진 선배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그러고선 시종일관 마치 일시적인 혈기에 이끌려 일탈한 후배를 감싸 안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이 감언이설은 단순한 회유를 넘어, 선배로서 온정을 베풀어 장차 나라에
    기여할 싹을 온전히 보전해두겠다는 의지로 보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의 태도에서 백태웅은 적어도 자신은 죽이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중략-

    출소후 이 두사람이 걸어가는 길도 확연하게 다르다.

    박노해가 '시인'이라는 타이틀만 긴직한 채 제도권 밖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느라
    안감힘을 쓰고 있을 때 백태웅은 미국유학을 떠났다.

    그의 유학을 위해 많은 제도권 인사들이 발 벗고 나섰다.

    출전- 안경환,<조영래 평전>,강,2006, 424~426쪽

    -------------------------------------------------
    지난 목요일부터 몸살 기운이 있어 힘이 들었습니다.
    목요일에는 집에 와 막걸리를 한 병 마셨고,
    금요일에는 찬빈이를 데리고 어머니댁에 들렀다가
    첫째 누나와 소주를 마시다가 집에 와 쓰러졌습니다.
    거의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아파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내는 제가 채식을  이후에 영양소가 결핍되어 오는 것이라고
    했으나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술을 너무 자주 마셔왔고 몇 달간 운동을 게을리 했으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로가 누적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으슬으슬 추웠으나 그냥 견디려고
    했으나 아이엄마가 신종플루일지도 모르니 병원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습니다(4,000원+2,700원).

    낮부터 밤까지 누워 베개와 이불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고,
    일요일 새벽이 되니 살 만하여 일어나 아이들과 아내가
    먹을 미역국을 끓이고 갈비를 구웠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사무실에 들렀다가 2시간 정도 늦을 것 같다고......"
    어디에 가냐고 하기에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에 꼭 가고 싶다고 하니.......

    "당신이라는 사람은 아파야지 집에 붙어있을 사람이냐고......
    시간만 나면 나가려하니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그런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악담을 퍼부으면서도 저를 그냥 보내주는 아내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도 제가 담아내야하는 부분입니다.

    2010.1.25. 일이 끝났는데 당번이라 잡혀 있는 시간에 무료하여
    ===============================================================

    그날 우리 가족 사진을 찍어주신 분께 부탁드립니다.
    아이엄마가 크게 뽑아서 집에다 걸어놓고 싶다고 합니다.
    제가 드린 명함주소로 원본사진 파일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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